초가공식품, 음식의 얼굴을 잃은 음식

권수빈 기자 / 기사승인 : 2025-10-25 15:23:56
  • -
  • +
  • 인쇄
현대인의 식습관, ‘시간의 압박’이 만든 식문화의 변형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현대 사회 속에서 빠르고 편리한 삶을 상징하는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 이제는 우리 몸속에 가장 익숙한 손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중독과 건강 붕괴라는 새로운 팬데믹이 도사리고 있다.


초가공식품은 ‘원재료의 흔적이 사라진 음식’이다. 원래의 곡물, 육류, 채소가 형태를 잃고, 대신 각종 감미료·향료·색소·유화제·보존제가 채워진다. 대표적으로 패스트푸드, 냉동 피자, 가당 음료, 시리얼, 과자, 즉석식품이 이에 속한다.

 

▲사진=연합뉴스

국제식품분류체계(NOVA)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은 ‘인공적 공정에 의해 만들어진 식품 시스템의 최종 산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이 음식들은 ‘조리된 음식’이 아니라 ‘조작된 물질’에 가깝다. 맛의 과학이 만들어낸 이 초가공식품들은 짠맛·단맛·지방의 쾌감을 극대화해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마약과 유사한 의존 메커니즘을 일으킨다는 경고도 있다.

경제 성장과 디지털화 이후 현대인의 식습관은 ‘속도’ 중심으로 재편됐다. 아침 대신 커피 한 잔, 점심엔 편의점 도시락, 저녁은 냉동 파스타처럼. 이 같은 생활 양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노동 구조와 도시 리듬이 만든 문화적 결과다. 특히 ‘혼밥’과 ‘간편식’은 개인화된 삶의 상징처럼 소비된다. 음식이 더 이상 공동체적 행위가 아닌 생리적 해결 과정으로 축소된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만성 피로·소화불량·비만·불면증 같은 ‘식생활성 질병’이 늘고 있다.

미시간대 연구에 따르면 50~60대 여성의 21%가 초가공식품 중독 기준에 해당했다. 중독의 기준은 그저 많이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갈망, 금단, 조절 실패, 사회적 회피 같은 항목은 알코올·니코틴 의존 평가에 쓰이는 지표와 유사하다. 연구진은 초가공식품이 비만·당뇨병·심혈관질환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우울증, 불면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미세플라스틱이나 합성 첨가물, 트랜스지방 등이 체내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장-뇌 축(gut-brain axis)에 영향을 미쳐 ‘식품 중독’이 식습관이 아닌 신경학적 현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년 여성은 생리적·심리적 변화가 겹치는 시기에 놓여 있다. 폐경기 호르몬 변화는 식욕과 대사 조절을 어렵게 하고, 우울감이나 불안감은 ‘위로 음식(comfort food)’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연구진은 “1980~90년대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자라난 세대가 바로 지금의 중년 여성”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저지방 요거트’, ‘라이트 쿠키’, ‘건강 스낵’으로 포장된 식품들 대부분이 초가공 다이어트 제품이었다. 이는 ‘살은 빠지지만 단맛은 괜찮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고, 결과적으로 식품 의존을 학습시킨 셈이다.


사회적 요인도 있다. 중년 여성은 가족 돌봄, 직장 스트레스, 갱년기 등 복합적 부담 속에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잃기 쉽다. 이때 가장 빠르고 손쉬운 위안이 바로 초가공식품이다. 초가공식품의 문제는 건강에 나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식문화의 붕괴와도 가깝다. 편리함을 넘어선 선택, 느림을 회복하는 식탁.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장 인간적인 ‘식사의 문화’일 것이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저작권자ⓒ 뉴스타임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사회

+

종교

+

오피니언

+